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문단 편집) == 개요 ==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蔚州大谷里盤龜臺岩刻畫),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을 지나는 [[태화강]]의 지류 [[대곡천]]의 암벽에 새겨진 [[암각화]]이다. 제작 시기는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 초기로 추정되고 있다. 이름인 '반구대'는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암각화]]가 발견되기 전부터 이미 붙여져 있었던 이름인데, 흔히 암각화가 세워진 바위의 이름으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세한 것은 후술. '''인류의 포경 활동을 묘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증거 가운데 하나'''로 인류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반구대 암각화의 발견으로 인해 '''세계 최초의 포경''' 연도가 확 올라갔다.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whaling#cite_note-1|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기원전 6천년의 반구대 암각화를 근거로 해당 시기부터 포경이 행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는 산업으로서의 포경과는 별개의 이야기로, 이후 역사시대 동안 아시아에서는 [[일본]] 외에 고래잡이 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천전리각석과 함께 '''《[[울산 반구천 일대 암각화]]》'''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으며, 현재 정식 등재를 준비 중이다.[[https://youtu.be/AfNz2Cs9AUo|#]] 암각화에는 고래 말고도 야생동물 수렵을 포함해 의미를 알기 힘든 문양과 기호 등도 많이 그려져 있으며 훼손 정도가 덜했던 발견 초기에는 약 300개가 넘는 그림이 확인되었는데 이후 50년동안 침수에 의한 훼손이 발생한 끝에 현재는 육안으로 식별가능한 그림들이 많이 줄어들어 버렸다. 자세한 것은 [[#s-6|6문단]]의 '''사연댐으로 인한 암각화 멸실 위기''' 부분을 참조. 반구대 암각화의 주요 내용이 [[고래]]이고, 울산시는 고래고기로 꽤 유명한 동네이기 때문에 울산시는 암각화의 디자인을 여러 곳에 사용하고 있다. 장생포의 고래박물관이나 울산역의 모조 암각화 등이 그것.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된 대곡천 자락에는 이외에도 암각화가 여럿 발굴되었는데, 인근에 위치한 [[울주 천전리 각석]][* 걸어서 약 1.5km 정도이다]도 그 중 하나로, 천전리 각석에서는 선사시대의 그림과 함께 약 1500년 전 역사시대 인물[* [[문무왕]], [[진흥왕]] 시대]의 기록도 발견되어 주목을 끈다. 현재 학계에서는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를 한대 묶어 '''[[울산 반구천 일대 암각화|울주 대곡천 암각화군]]'''(Petroglyphs of Bangudae Terrace in Daegok-ri, Ulju)이라는 이름으로 취급하고 있다. 사연댐 건립 과정에서 해당 지역에 대한 매장문화재 전수조사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만약 사연댐이 철거되어 수몰지역에 대한 전수 발굴조사가 이뤄진다면 이외에도 다른 암각화들이 많이 발견될지도 모른다. [* 자세한 것은 '''또다른 암각화의 가능성''' 문단을 참조.] 본 문서에서는 반구대 암각화에 대해서만 다루지만, 반구대 암각화가 대곡천 암각화군에서 가장 대표성을 띄는 문화재인 만큼 대곡천 암각화군에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 또한 모두 함께 서술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